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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르지 앓을 수 있다면 2카테고리 없음 2024. 5. 21. 08:23
그래도 일을 해보고 싶어서 가지고 있는 영어 실력으로 그나마 과외나 학원 선생님이라도 해보려 했건만 번번히 쫓겨나고 말았다.
그래도 대졸 영문과라 써주는 데가 있지 않을까 열심히 문을 두드려보았지만
이 작은 도시에서는 지원해볼 곳 역시 많지 않았다.
한 2년 즈음이 되자 왠만한 영어 학원을 다 다녀본 셈이 되어
과외로 뛰려 해보았지만
영어 문법이 아무래도 부실했다.
해나는 문학적 감각은 타고났다고 아버지로부터 익히 들은 바 있었고
그녀의 논술 솜씨가 상당하였기에
자신의 수능 점수로서는 갈 수 있는 높은 수준의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 대학에 들어갔을 때 이제 네 앞길은 트이는구나 하며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하지만 학창시절 돈이 없어 학원을 잘 다니질 못한 탓일까
영어 문법이라든지 기초가 많이 부실했다.
그래도 영어 책을 가져다놓으면 그 수수께끼 같은 언어를 잘도 풀어내곤 하였다.
졸업을 하자
아버지께서 결혼을 시키시려 서두르는 와중에 한 젊은 청년을 카페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그 카페에서 커피를 만들어주며 계산대를 돌보는 일을 아르바이트로 하고 있었다.
그 청년은 참 명민하고 다정해 보였다.
한 주일날 찾아온 이 청년은 그 후에도 간혹 가다 들렀는데
그 때 마다 해나는 그에게 아메리카노를 건네 주었다.
어느 하루 졸업 애기를 하다
그녀는 그가 자신의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의 직원임을 알게 되었고
아버지는 그를 알자, 집으로 데려와 딸에게 소개를 시켜주었다.
둘은 곧장 연애를 시작했고
별 하자 없어 보였던 그녀를 그 민씨 집안에서는 며느리로 맞았다.
그리곤 아버지가 그 해 돌아가셨다.
슬픔에 헤매이던 그녀를 남편인 민건국씨는 그를 위해 그녀가 아버지와 찍은 사진이 담긴 작은 사진액자를 그녀에게 주었고 그녀는 그 사진을 보며 아버지를 기리는 해나는 남편을 참 감사히 여겼다.
두 사람을 오순도순 살아가기 시작했지만
어려움은 이때부터였다.
아이는 들어서지 않았고
직장은 구할 수 없었으며
직장인이 되려고 노력할 수록
그녀는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뼈아프게 각인하여야 했다.
집에서 stay home mother가 되려고 해도
아이조차 가질 수 없는 그녀는 병원에서 그너가 불임증임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 해 2021년은 참으로 비극적인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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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를 한번 무작정 이어나가 봅니다.
아버지께선 구도를 잡아보고 하는 것이 어떻냐고 하십니다.
한번도 소설을 써보거나
소설 쓰기 레슨을 받아본 적이 없어
한번 되는 대로 해봅니다.
학구페이퍼는 대학원때 페이퍼 에 대한 강의를 들어 조금은 아는 바이지만
창작 글쓰기는 영 사전 지식이 없습니다.
제가 몇 분께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실제적인 조언들을 구해보기도 했습니다.
두 분의 조언이
그냥 써라 !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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